포스트

고구려 1

미천왕:떠돌이 을불

고구려 1

너무나 유명한 김진명 소설가에 또 대표 소설인 고구려를 결국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책은 절대 시작하지 않지만, 1부 완결이라는 소개에 기다림을 접고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서두

“그래, 저 멀리 무곡성 곁으로 달아나야 한다. 그게 천문의 이치야. 그런데 그 작은 별은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해. 그 별이 무곡성으로 가려면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밀고 끌 힘 말이다. 그런데 마성에 잠식된 별들은 밀 힘이 없어. 방법은 오직 하나, 무곡성의 별이 내려가 끌어야 한다.”
“하지만 무곡성 주변의 별들은 모두 진(晉)의 별이 아닙니까?”
“그러하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겠느냐?”
“······?”

마성의 등장

역사 소설이라고 한다면 실제 역사와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가 아무래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소설적 장치가 시작되는 건 삼국지든, 수호지든, 초한지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였으면 더더욱 이런 표현이 익숙합니다. 그리고 이 거리가 다큐이길 바라면서 소설적 재미를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독자 욕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결론은 장르소설에 가깝지 않나 입니다.


영웅들과 여인

“다루 공자께서 적어내신 가격은······.”
여기까지 빠른 목소리를 내보내던 아영은 고개를 들어 을불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뒤를 이었다.
“낙랑입니다.”

두 영웅, 마주치다

미천왕 시기 가장 큰 적은 선비족이었던 모용외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여인을 가공하여 이들 만남을 극적으로 그린 장면입니다. 어쩌면 스포일러에 가까운 이 인용은 제가 읽으면서 어떤 대단한 답변을 작가가 고민했을까 궁금증을 자아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름 설득력을 가진 답변이기도 했습니다.


비운의 인물

양운거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거동할 수 있게 되자마자 급히 태수를 찾아 인사를 드리는 게 올바르다고 직선적으로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양운거는 이제 자신을 찔러오는 이 은근한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연히 깨닫고는 고개를 들고 허허 웃었다. 이놈의 정사(政事)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무예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양운거

등장 인물 중 가장 측은한 마음이 가는 인물이 이 양운거입니다. 물론 가공인물입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소설 장치에 잘 연결을 해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비운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을불이라는 인물을 역사와 달리 좀 더 흥미로운 인물로 바꾸고자 할 때 필요했으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 현실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보니 입맛이 씁쓸합니다.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께서 당시 유명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언급하며 ‘그게 소설이냐?!’라고 한마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책도 잘 읽지 않던 저는 그쪽 계통이 갖는 쓸데없는 아집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올라가서 시간을 떼우기 위해 그 소설을 보며 선생님께서 했던 말이 이해는 됐습니다. 소설에서 쓰던 표현력이 우리가 기대하는 소설가들의 것들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미있긴 했습니다. 그런 기억에 김진명님의 소설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역사 소설이 읽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던 1권은 그런 우려가 기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작권자의 CC BY-NC-ND 4.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

인기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