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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7

고국양왕:동백과 한란

고구려 7

고이련, 즉 후에 고국양왕이 되는 동생에게 섭정을 맞기고 전개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유학을 상대로 더 큰 싸움을 벌이는 고구부와 전장과 정치 한 복판에 내 던져져 고분분투하는 고이련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입니다.


태왕의 수

“네 군사로구나. 진정한 고구려인들의 강한 군사구나.”
“······예.”
“거란에 이토록 많은 숫자가 있는데도 이길 것을 알았더냐.”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고구려의 드높은 이름을 세우는 것만 생각하였습니다.”
“장하다. 너는 필히 훌륭한 태왕이 될 것이다.”
……
“이제 족하다. 군사를 물려 고구려로 돌아가거라.”

허풍쟁이 전쟁광

설명을 해도 못 알아 듣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에 묘사된 고구부가 아무리 천재라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태왕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쳐도 후에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대상으로 여기는 동생에게 마저 이런다는 건 너무도 잔인한 일입니다.


고고학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던 거대한 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치 작은 바둑알이 되어버린, 그것도 더러운 일에 쓰이고 버려지는 헌신짝 같은 자신. 그의 평생을 지배하고 삶을 이끈 가르침들조차 눈가리개이고 재갈이며 멍에였다. 유학에의 드높은 자부심과 존경을 빼놓은 그는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땅이 토하다

유학을 대적할 방법으로 고고학을 선택한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방법이긴 합니다. 그리고 이 싸움이 보여주는 전개를 ‘백동’이라는 인물에게 투영합니다. 중국에서 시작한 유학이 중국 사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정작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통해 지금까지 영향이 깊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유학을 적으로 규정한 면도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양위

“네 자식의 이름을 지어보았다. 담덕(談德). 품은 바를 온 천하 사람들과 나누라는 뜻이다.”
“나는 아들이 많소.”
“태자가 될 아이에게 주면 될 터.”
태자를 삼으라, 그것은 비로소 온전한 양위의 뜻이 나온 것과 진배없었다.

동백과 한란

이 책 부제에 ‘고국양왕’ 보다는 계속 ‘소수림왕’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다음에 나올 책은 바로 광개토대왕으로 넘어갈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끌 생각이면 미리 양위를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까지 합니다.



소설에서 고구부는 천재일지는 모르지만,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안위와 본인이 가진 큰 뜻만을 투영하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그려진 인물 중 고사유, 고국원왕을 포함해 이런 부류 인물들이 위정자가 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다음 권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고구려를 얘기하려면 정작 나와야할 광개토대왕이 이제 이름을 얻기 전인데, 다음 책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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