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있는
Eversible
저자 문목하님은 이 책이 데뷔작입니다. SF 소설로 재난 이후 세계를 기반으로 인간 심리와 집단 생존에 대한 주제를 중심으로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소설가가 쓴 글답게 한글이 가진 미려한 표현들이 눈에 담기는 기쁨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거대한 싱크홀과 초능력의 기원
연도는 차치해도 사건 자체는 갓난애가 아닌 이상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산 하나가 통째로 땅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도에서 지워지기 전 그 산은
경기권 도시 세 군데를 가운데서 막는 넓고 높은 곳이었다.
땅은 그런 산을 뿌리부터 꼭대기까지 잡아먹었다.
등산로 입구도, 주차장도, 약수터도, 산 깊숙이 자리 잡은 절도,
정상에 길게 늘어선 산성 벽도, 평화롭게 산을 타던 사람들도
전부 지하로 빨려들었다.
2 당신이 마주한 이야기
책 소개에 담겨있는 것처럼 이 책은 싱크홀이라는 재난을 주제로 합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규모를 넘어서고 그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염동력이 생긴다는 설정입니다. 그렇게 전개되는 사건 중에 살아남은 이들은 갑작스럽게 공권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그들 스스로도 둘로 갈라집니다. 이들이 초능력이 생긴다는 설정은 나름 설득력이 있으나, 공격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내내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라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장태성, 설명되지 않은 증오
장태성은 그들을 향해 가장 먼저 발포한 일선이었다.
회사는 그에게 직통으로 명령했고,
그를 따라 다른 요원들과 부대원들 역시
정체 모를 유령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8 당신이 선택한 이야기
장태성은 이 책에서 큰 축을 이루는 인물임에도 입체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끝을 알 수 없는 증오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의 인물상은 자세히 그려지지만 왜 그런 혐오를 갖게된 이유의 부재는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에서 국가정보원이 특수부대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행사하는 설정에 대해서는 재미는 있지만 이제는 다소 진부하지 않나 싶습니다.
타임슬립과 감정의 봉합
정여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주상을 보았다.
그리고 먼 바깥에 환영처럼
스쳐 지나가는 윤서리의 모습을 보고,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겠어요?”
정여준은 미소 지었다.
최주상이 그를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이로 느낄 만큼 찬란한 미소였다.
“왜겠어요.”
10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최주상 또한 장태성과 더불어 한 가지 성격으로만 설명되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이 대화까지 가야하는 설정은 대사를 위한 도구로 여겨져 불편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영겁의 세월을 보면 SF 라기 보다는 절제된 표현을 통한 연애물이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結
쓰고 보니 불평불만이 가득한데,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재밌습니다. 그럼 재밌었던 부분을 써야할텐데, 그런 부분보다는 단점들이 자꾸 밟혀 글을 읽어 나가는데 거부감이 들었기에 아무래도 이런 점만 나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재밌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리고 딱 한 편의 영화 분량으로 느껴질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는 이야기 전개도 눈에 띕니다. 재밌다는 점에서 저자가 쓴 다음 책도 탐독해 볼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