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해마
내친김에 두번째 책까지 읽었습니다. 전작 『돌이킬 수 있는』이 초자연적인 싱크홀로 인해 산 자에게 생긴 초능력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AI 가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이 존재를 AI 와 구분하여 그 보다 상위로 거의 인간과 유사하여 ‘해마’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해마’들은 인간처럼 해마체라는 육체를 가집니다. 물론 AI 답게 네트워크를 흘러다닙니다. 어쩌면 AI 가 인간과 유사해지기 위해서는 인간처럼 육체를 가져야 한다는 어떤 학자의 얘기를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드러나게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함정 미션과 AI의 직감
내 함정미션을 해결할 열쇠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래서 그토록 많은 인간이 예언이나 미신을 믿는 건가 싶었다.
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직감이었다.
나는 중앙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내쫓기만 하면 됐다.
방법은 내 자유였다.
너였다.
나는 너를 쓸 것이다.
제1부
8
출판사에서 소개한 이 책 배경을 보면 해마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함정 미션이 주어지고, 이를 반드시 해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이자 인간에게는 기자라는 배경으로 통해 서로 협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AI, 즉 해마입니다. 실제로 군용 살상 무기에 여러가지 제약을 걸고 운용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전투를 끌고가는 것을 목격한 사례가 이미 과거에 있습니다. 단순 처리가 아닌 인간을 대체하는 해마라는 존재가 생긴다면, 더더욱 사람을 주도할 거라는 저자의 상상은 오히려 희망적이고 밝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칩니다.
백업이라는 또 다른 자아
백업이 옳았다.
백업에게는 내가 백업이었다.
“너는 나지만, 나는 네가 아니라고, 내가 그랬었지.”
백업의 정신이 진동했다.
“나만 앞서나가고 너는 머물러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
나만의 시간은 특별하게 여기고
너만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어.
미안해.
내가 틀렸어.
너는 그냥 너야.”
제2부
28
해마에는 두 인격체가 있습니다. 서로를 백업으로 부르며 교대를 합니다. 이야기 흐름을 위해 이런 장치가 들어간게 아닐까 싶었는데, ‘백업’이라는 표현 때문에 저는 다소 불편했습니다. 아무래도 IT 업종이다 보니 이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과 왜 서로 시간 흐름에 따라 교대로 숙주를 다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소설이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되긴 할텐데, 아무래도 이 분야에 종사하다보니 그냥 넘어가기가 껄끄러웠습니다. 의료계에 있는 사람들이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이나 법조계 사람들이 법조 드라마를 볼 때 느끼는 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유령 해마와 감시받는 인간들
우리는 사람들이 그 유령 해마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거의 광분하며 재미있어했다.
사람들은 해마가 자신들을 지켜본다는 사실에 대해
지치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흥미로운 소문을 대하는 것보다
훨씬 정열적이고 공격적인 자세였다.
해마가 담당 구역을 지켜본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가
왜 그들에게 요란한 화젯거리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령 해마의 소문이 우리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돌아다니는 건 퍽 즐거운 일이었다.
제2부
∞
책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책 말미에 나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빅 브라더’라는 용어도 관련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래도 어떤 조직이 그 역할을 한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 진행되는 AI 흐름을 보면 그 어떤 조직이나 사람이 아닌 AI 자체가 ‘빅 브라더’가 되는 건 아닐지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이 존재를 우리는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단지 기우일지 모르겠습니다.
結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기자는 남자로, 해마는 여자로 설정할 것 같습니다. 요즘에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트랜드를 보면 남녀의 격차를 좀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여기에 여자가 해마라면 제격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드라마라면 함정임무에 좀 더 이야기를 만들어 붙이면 분량이 나오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물론 그러려면 책 분량만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겁니다. AI 라는 존재를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설정한 것에 따라 철학적 고찰이 좀 더 녹아 있다면 꽤나 수작이 나오지 않을까 공상도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