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하)
중세의 '압도적 선구자',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
皇帝フリードリッヒ二世の生涯 下
塩野七生 | 2013
상권이 전성기까지라면 하권은 그 이후가 될 겁니다. 쇠락기가 아닐지라도 결국 죽기 전까지 있었던 사건들, 그리고 사후 벌어진 일들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지식인을
주변에 모아두는 것만으로 만족할 남자는 아니었다.
그도 직접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멜피 헌장’과 카스텔 델 몬테 성,
그리고 매사냥에 관한 책이다.
간주곡(intermezzo)
친구들
드라마에서 사건과 갈등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등장인물이 얼마나 입체적으로 그려지는지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이 책 주인공인 프리드리히는 그런 면에서 참 다양한 면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입니다. 보통 천재로 그려지는 인물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번에 다양하게 진행합니다. 하나에 집중해도 제대로 해내기 힘든 제게는 참 신기한 부분입니다. 그런 열정과 능력이 부럽기도 합니다. 남겨놓은 족적들을 보면 그 하나도 난 못 이룰 것들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눈으로 봐도 믿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황제 프리드리히가 교황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신(예수)은 영혼의 구제는 교황 이하 성직자들의 역할이고,
육신의 구제는 황제를 비롯한 세속 통치자들의 역할이라 했으므로,
그것을 충실히 실행하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중세 유럽을 뒤흔들었던
‘겔프(교황파)’와 ‘기벨린(황제파)’의 쟁점이었다.
8장 격돌 재개
유언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한 쟁점이었을 겁니다. 유럽사가 이슬람과 함께 엮여서 봐야하면서도 종교사, 즉 카톨릭과도 한 몸인 상황에서 이를 분리해 생각한다는 것이 당시에는 단순한 논란거리는 아닐겁니다. 지금도 로마로 인해 카톨릭이 살아남았다는 견해와 카톨릭이라는 종교 때문에 로마부터 시작해 유럽이 있었다는 견해가 충돌합니다. 뭐가 옳다는 건 제 소관도 아니고 관심 대상도 아닙니다. 다만, 단순히 통념을 반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까지 걸린 일에 본인 생각을 관철시킨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사후 무너져 버린 신성로마제국은 중세를 종식하고 근대로 넘어갑니다. 새로운 것을 보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한 번 보면 잊지 못하고 바라는 것도 인간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최소한 10년을 넘는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시스템이라는 걸 생각한 영민한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전복보다 어렵다는 혁명을 일으키려한 이 사내를 보면서 우리 스스로 가능성을 포기한 게 한둘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차피 안 될거야’ 불굴의 의지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지금이 내게 가장 젊을 때라는 걸 생각하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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