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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이 소설에서 배경이 되는 청파동은 제게는 남다른 곳입니다. 군제대 후 복학한 시점부터 늦은 나이에 결혼할 때까지 모든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배경인지 모르고 계속된 광고에 현혹되어 결국엔 읽기 시작한 탓에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장소 하나 하나가 선명한 사진처럼 15년 동안 변해간 자리가 그대로 떠올라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모든 장소가 어디를 보고 쓴 것인지 눈에 선했고 그리웠습니다. 이래서 추억은 늘 아름다운가 봅니다.


노숙자

전화를 끊고 나자 기분이 묘했다.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동물의 음성 같은
어눌한 말투는 그가 노숙자임을 확신케 했다.

산해진미 도시락

한 편의점 주인이 노숙자를 만나면서 인간적인 관계가 시작됩니다. 주요 인물인 노숙자 ‘독고’씨는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밝혀집니다. 이야기라는 것이 사건에 사건이 겹쳐지다보니 우연이라는 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인물 묘사와 현실감으로 우연이라고만 생각되진 않는 전개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작가의 힘이고 이야기가 주는 매력일겁니다.


삼일교회

15분쯤 걸었을까,
서부역 뒤편의 칙칙한 거리가 끝나고
세련된 큰 교회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여대 앞인지라 청바지에 점퍼를 입은
여학생들이 깔깔대며 지나갔고,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분식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산해진미 도시락

개인적으로 이 부분 묘사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곳이라 어떻게 묘사가 될지 내심 기대했는데, 너무나 짧아 참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청파동 숙대 상권을 되살린 원동력이 된 곳인데, 이렇게 간단한 소개라니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분이 이곳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묘사도 제가 떠나온 뒤로 몇 해가 지나온 광경일테니 아련하기만 합니다.


편의점

여자 작가는 이 편의점을 아주 싫어해요.
사내도 불량해 보이고 물건도 적어서 불편한 거예요.
그런데 겨울이고 춥고 새벽에 멀리
음식을 사러 갈 수가 없으니
불편해도 여길 계속 이용해야 하는데……
아주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불편한 편의점

편의점이란 공간이다 보니 우리 같은 서민들 삶이 배경입니다. 익숙하고 따뜻한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다소 아쉬운 건 역시 작가다 보니 비슷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렇게 이야기 전개는 예상 가능한 진행으로 흘러갑니다. 약간은 더 임팩트 있는 전개가 뒷부분에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러면 또 이 소설이 주는 잔잔한 재미가 희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활용품 vs 폐기물

너 재활용품이랑 폐기물이랑 어떻게 다른지 알아?
모르지?
근데 폐기물을 재활용품이라 우기며 갖다 두는 놈들이 있어.
폐기물 스티커 붙여서 내놓으라 하면
어디 경비가 따지냐며 날 폐기물 보듯 한다고.
그럴 땐 그냥 놈을 쓰레기통에 확 처넣고 싶은데 말이야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아

소설 전체에 사용된 단어들은 중의적으로 사용된 것들이 많습니다. 불편이나 폐기 같이 부정과 긍정, 절망과 희망을 양면처럼 표현하려는 작가의 노력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등장 인물들이 잠시 소모되고 버려지지 않도록 배려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고’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며 마지막 실타래를 풀어갑니다. 책이 주는 기온처럼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흘러가지 않도록 감정을 눌러놓은 표현으로 이 책은 담담히 마무리 지어집니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있던 것으로 아는데, 자극적인 요즘 소소한 재미를 더 담을 수 있다면 좋은 드라마로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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